"내가 한전에 있을 때 말이지....
(고인이신 선배님 중 그 아드님의
글이 회보에 게재된 내용을 올림)
홍경의 |故 홍성명 아들
아버지께선 함께 식사할 때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으실 때면 언제나 이 렇게 말씀을 시작하면서 한전에서 근무할 때의 일화를 들려주곤 하셨습니다.
퇴직 이후 30년이 흘렀으니 그 오랜 기간 동안 가족들이야 수백 번도 더 들어 다 외울 정도의 이야기이나 말씀하실 때면 언제나 처음 말씀하시는 것처럼 진지하고 확신에 찬 음성으로 자부심 가득히 얘기하시곤 하셨는데, 매번 듣는 가족들은 기꺼이 경청을 하면 좋았으련만 얘기가 길어지면 또 같은 얘기 하신다고 어머니는 타박도 하시고, 저도 빨리 얘기가 끝나길 기다리곤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런 생각이 듭니다.
1934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셔서 그 시대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가족을 봉양하며 어렵게 대학을 다니신 후, 변변한 일자리가 없던 시절 몇 안 되는 국영 기업 중 한국전력에 입사하여 30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집도 장만하고 자식들 교육과 결혼도 모두 시킨 후 정년퇴직을 하셨으니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이 얼마나 크셨을까!
정년퇴직 이후에는 조직 생활을 오래 하셔서인지 갑짜기 생긴 많은 시간을 곤혹 스러워하시며, 노후에 어떻게 보낼지를 꼭 생각해 두라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. 그래도 한전 퇴직자 정기 모임이나 테니스대회가 예정되어 있는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 놓고 빠짐없이 나가셨는데, 조그만 선물이라도 받으면 아직도 회사에 다 니는 것 같다며 그리 만족해하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.
여러 가지 다른 취미도 갖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좀 더 여생을 풍부하게 사셨으면 했는데, 퇴직 이후에도 한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아직도 머무시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.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한전을 다닌 30년뿐만이 아니라 퇴직 후 30년도 여전히 한전에 소속되고 싶으셨던 것 같고, 또 한전전우회를 통해 퇴직 후에도 '한전인'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.
시간이 가면서 한전 내 친한 지인분들이 하나 둘 돌아가실 때마다 많이 우울 해하시며 미술을 드시는 날에는 보기에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.
연초 낙상 후 몇 달 동안 거동을 못 하실 때는 남은 생을 정리하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, 언젠가 말씀하시길 "나는 너무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다. 내가 죽는 다면 호상이니 크게 슬퍼할 필요 없다. 내 장례식에는 내 동료, 지인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생존해 있다 해도 아마도 몸이 많이 불편한 상황이라 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, 그래도 오시는 분들은 정말 어렵고 힘들게 와 주신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? 그러니 극진히 식사 대접을 하고 내 지인들에게는 조의금 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."라고 하셨습니다. 또 전우회 연락처를 건내주시며 다른데는 몰라도 전우회에는 꼭 잊지 말고 연락을 해야 한다며 저에게 재차 다짐을 받으셨습니다.
어머니와의 결혼 60주년인 12월에는 큰 잔치를 해야겠다고 하셨는데 뜻을 이루 지 못하고 청명한 가을 10월에 돌아가신 게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.
돌이켜 보면 아버지에게 한전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, 처자식을 부양해 주고 당신을 지탱해주는 아버지와 같은, 또한 당신 자신과 가족을 언제나 보살펴 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아나었을 까
생각됩니다.
24년 1월 23일 화요일 춥고 많은 눈